창립기념일 선물

창립기념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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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소개받는 기회가 흔치 않다. 소개받은 책이 공감을 형성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책 소개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쉽지 않은 법이다.

몇 년 전, 첫째 아이가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갔다가 책을 하나 사들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번역본이 나와있다며 찾아주었다. 저자에 대해 놀랐고 제1부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를 읽고는 한탄했다. 다른 한편, '우리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하며 놀라기도 했고. 반쯤 읽다가 미뤄두었다. 이제 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 집중했다.

책은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About Looking>. 한국에는 이미 2000년에 초판이 나왔고 2020년에 개정 1쇄가 출간됐다. 이런 땐 무지를 자백해야 하는 법이다. 무지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또 하나 생겼다. 이 책을 덮어두고 있던 작년 5월, 동아일보가 프란시스 모리스 전 테이트모던 관장의 인터뷰를 실은 적이 있다.

우연치 않게도 그때쯤 경복궁 근처 초밥집에서 뵌 적이 있다. 그것도 바로 옆 자리에서. 그 분의 말씀.

"1970년대에는 존 버거의 '다르게 보기' 같은 중요한 책들이 있었어요. 이 내용을 BBC 다큐멘터리로 처음 봤을 때 저도 충격을 받았죠.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굉장히 편협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러니까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는 (존 버거와 같은) 인문학적 성취들이었어요."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삶으로 인해, 동물들은 인간에게 인간끼리의 그 어떠한 교류와도 다른 친구로서의 관계를 제공하게 된다. 다르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에 대하여 제공되는 친구 관계이기 때문이다."(<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 1977년)

"강제에 의해 주류에서 밀려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모든 장소들–빈민가·판자촌·감옥·정신병원·강제노동수용소-은 동물원과 공통적인 어떤 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물원을 하나의 상징으로 이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하고, 지나치게 현실도피적인 것 둘 다에 해당한다. 동물원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증거일 뿐 그밖의 어떤 것도 아니다."(같은 글)

"동행이 없이 각각의 동물을 바라보고 있는 동물원 관람객은 혼자인 것이다. 여럿이서 함께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그들은 마침내 고립되어 버린 종에 속해 있는 것이 된다. 동물원이 그 경계표가 되는 이러한 역사적인 상실은 자본주의적 문화에서 이제는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

「줍는 순간」
안희연 지음 | 난다 펴냄

안희연 시인이 2005년부터 2025년까지 20년간의 여행을 담은 산문집을 출간했다. 대학생이 되던 19살부터 지금까지 안희연 시인은 한 해도 놓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총 4부로 이뤄진 이번 책은 '생의 풋기' '예술', 그리고 '사람'을 여행하고 '시'라는 종착지에 다다른다. 모든 시간은 얼룩을 남긴다고 믿는 시인은 그 얼룩 속에 남아 있는 자기 자신에게 화답하기 위해 글을 쓰고 또 그 순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글을 몰라 이제야 전하는 편지」
권정자 외 13명 지음 | 남해의봄날 펴냄

뒤늦게 배운 글과 그림으로 진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냈던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이후 6년 만에 나온 순천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글을 몰랐던 할머니들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간절한 소망 중 하나였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 보고싶은 남편, 항상 사랑하는 딸, 언제나 걱정하고 있는 아들을 향해 말로는 차마 전하지 못할 것들이 담긴 편지글과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섬세한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호수와 암실」
박민정 지음 | 북다 펴냄

일상 속 체감할 more info 수 있는 공포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그리는 'ANGST(앙스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나왔다. 박민정 작가는 모멸과 혐오가 공포가 된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무감각해진 우리의 인식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가의 문장은 저주와 빙의로 가득 찬 오컬트적 세계를 말한다. 소설은 귀신과도 같은, 귀신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실체를 마주하라고 요구한다.

이정화 작가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부조리한 현실, 잔인한 본성을 초현실적 설정을 통해 풍자적으로 풀어낸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는 작가의 손에서 뒤집히고 의심스럽게 변한다. 하지만 이 전복이 묵직하기만 한 건 아니다. 씁쓸한 맛에는 유쾌함도 섞여 있다. 환경오염, 인간의 욕망, 이기심, 법조계의 부패, 축복을 사고파는 사회를 다룬 스무편의 이야기는 우리의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평등한 세상이 너무 멀어」
나승위 지음 | 다정한시민 펴냄

대표적인 인권 존중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의 법과 제도는 시민의 선한 마음에만 기대지 않는다.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반려견, 난민과 이주민을 스웨덴에서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어떤 제도를 통해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걸까. 이 책은 타인의 인정에만 기대지 않고 단단한 규칙으로 만든 스웨덴 사회를 소개한다. 우리 역시도 스웨덴처럼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우리 반에도 있다」
김현 지음 | 낮은산 펴냄

마음이 복구 불가능한 걸레처럼 여겨지는 순간들, 금기의 한복판에서 늘어가는 비밀을 주체하지 못하던 시간,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일기장을 욕으로 채우던 시절이자 나를 괜찮은 세계로 이끌어준 우정이 시작한 자리, 10대의 기억은 삶의 그 어느 시기보다 강렬하다. 10대라는 과거는 성인이라는 현재와 부딪히고 화해하기도 하며 포개지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는다. 이러다 보니 부모에게 상처받으며 자란 사람은 자기 경험을 말할 수 없고, 도리어 자신이 부모에게 상처를 줬다고 왜곡하기도 한다. 자녀들은 왜 항상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용서를 강요받을까. 이 책은 가정이 어떻게 우리 마음에 사무치는 흔적을 남기는지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게 돕고, 자책하지 않도록 안내한다.

「매출이 오르는 가게는 무엇이 다를까?」
현성운 지음｜포르체 펴냄

고객의 소비패턴은 달라졌다. 주요 소비자로 떠오른 MZ세대는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개성과 취향은 더욱 섬세하고 다채로워졌다. 이런 변화를 읽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매장만이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서비스 마케팅 전문가인 현성운 대표는 인상적인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방법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제시한다. 새롭고 압도적인 고객 경험을 제시한다면, 단골을 넘어 충성 고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각별한 실패」
클라로 지음｜을유문화사 펴냄

실패의 연습만이 가능성의 장을 넓혀 준다.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더 낫게' 실패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협, 타협, 막다른 난관은 저주가 아니라 행운이다. 저자 클라로는 이 성찰적 에세이에서 카프카, 콕토, 페소아를 소환하면서 실패라는 현상의 다양한 틈새를 깊이 들여다본다. 섬세한 감수성과 유머를 구사하며 자신의 실패 목록까지 작성해 보이는 저자는 우리의 한계와 상처를 다시 생각하고 그것들의 효용을 고려할 기회를 던진다.